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폴리 전투 (문단 편집) === [[그레이트 게임]] === [[영국]]은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일대에 식민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영국 해군]]의 해군력으로 방어할 수 없는 곳들, 가령 인도가 큰 골칫거리였다. 특히 러시아는 유라시아 대륙 일대의 모든 식민지에 육로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최대의 주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오스만 제국]], [[아프가니스탄]], [[동아시아]]에서 영국군과 외교관들이 활동하며 그레이트 게임을 벌였고, 그 결과가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영일동맹]], [[거문도 점령 사건]] 등이다. 오스만은 흑해를 통해 중동으로 러시아 세력이 남하하는 통로라, 영국은 오스만 제국에게 당근을 내미게 된다.[* 의외지만, 식민제국 시대 영국은 외교관을 파견해 당근을 내미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식민지는 땅따먹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과 독점적으로 교역을 하는 나라'''들의 목록이고, 독점적인 외교나 합병은 그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협상으로 모든게 해결되면 제일 최상의 상황이었다. 그럴 리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오스만은 이 시기에 자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문어발을 걸치게 되는데, 대외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영국으로부터 전함을 계약하며 차관도 받고, 프랑스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고, 독일로부터 군사고문단을 파견받아 육군 근대화를 꾀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현명한 외교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서로 으르렁대던 세 나라들이 현 상황을 이용하며 이득만 빼먹고 있는 오스만 제국을 매우 아니꼽게 여겼을 거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중립은 처음부터 꽤나 '''기울어져''' 있었다. 영국의 전함과 프랑스의 차관과는 달리, 독일의 군사고문단은 대접받을 거 다 받는 상황이라 다른 두 나라의 선물에 비하자면 보잘것 없는 지원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독일 제국군]]의 총부리를 오스만 제국의 군주 [[파디샤]]의 코 앞에서 들이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포병기지를 건설한 뒤 독일 제국군이 접수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니 19~20세기 초엔 후세대의 핵무기와 같은 위상의 전략병기인 전함을 팔아주던 영국과, 적지 않은 돈을 빌려주던 프랑스처럼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던 나라들은 자신들이 독일과 동급이라는 사실을 그닥 좋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영국이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는 동안에는 파디샤가 최소한 러시아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독일이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